오늘은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 철학에 대해서,
자살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부조리(不條理)는 비합리적이거나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성질 혹은 행위이다.
철학적 의미로는 인생에서 그 의의를 발견할 가망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인간과 세계, 인생의 의의와 현대 생활과의 불합리한 관계를 나타내는 실존주의적 용어로,
특히 프랑스의 작가 카뮈의 부조리 철학으로 널리 알려졌다.
알베르 카뮈 (프랑스의 철학자 , 작가 , 신문 기자였다.)
카뮈는 에세이 《TheReverse》에서 그의 전 생애가 여전히 개인의 자유를 깊이 파고드는 동시에
허무주의 철학에 반대하는 데 헌신했다고 썼다.
1957년 에는 역대 두 번째로 어린 43세의 나이에 노벨 문학상 을 수상했다.
실존주의자로 분류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러한 평가를 거부했다고 한다.
카뮈는 '부조리'에서 내가 느끼는 고통도 결국 내가 살고자 하는 강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나의 삶의 욕망이 의미를 만들려고 하고, 또 원하지만 무의미한 세상에 의해서 좌절되는 것을 부조리라고 본다.
반항의 일종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조리를 견디다 못해서 자살로 나아가는 것은 너무 황당한 일이다.
카뮈는 '철학적 자살' 즉 세상에 대한 나의 신념이 깨졌다고 죽는 것을 가장 어리석은 일로 여긴다.
이유는 니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신념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잘 살고, 행복하게 살려다 보니까 생긴 것인데, 이를 위해서 죽는 것은 목적과 수단이 뒤집힌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을 정리하자면, 니체 사상에서 인생론 부분을 구체화 시킨 것이다.
카뮈는 부조리를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무너진 것에서 오는 상태로 정의한다.
카뮈의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받는 것은 시지프 신화이다.
카뮈는 니체와 다소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카뮈는 초인이나 상상력 추구 등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카뮈와 니체가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을 대상으로 책을 썼기 때문이다.
니체의 경우에는 지적이면서 창의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 가령 혁명적인 지식인이나 예술가 등을 염두에 두고 사상을 전개했다.
반면에 카뮈는 그가 고려하는 사람이 노동자라는 것을 명확히 밝힌다. 지식이나 사상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인 노동자로서는 니체와 같이 스스로 상상력과 지적인 발랄함을 발휘하라는 조언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카뮈는 이러한 일반 노동자 계급의 시점에서 어떻게 부조리를 타파할지를 고민한 것이다.
매 순간을 '소진'시키는 것은 카뮈에게 중요했다.
모든 진리는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결국 남는 것은 감각적 경험 뿐이다.
카뮈가 보기에는 절대적인 진리가 없기 때문에 그 어떤 경험도 우열이 있을 수는 없다.
'힘들게 살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
카뮈의 어록을 살펴보자.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자살이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시지프 신화에 등장하는 부조리
카뮈의 부조리는 말은 그대로 조리가 없고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완전한 인식"을 간절히 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완전한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별 새로울 것은 없는 생각이다.
때문에 결국 인간이 가진 모든 인식들은 언젠가 세상이란 벽에 부딛혀서 깨져나갈 운명에 있다.
예를 들자면 뉴턴 역학이 빛의 움직임을 설명하지 못하고 폐기되는 것도 그런 것이다.
이렇게 인식이 깨져나갈 때 우리는 갑자기 세상을 설명하는 자신의 설명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고, 세상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혼란스럽고 괴로운 일이다. 그런데 완전한 인식의 불가능함은 이 괴로움에서 우리가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적인 인식을 안겨준다.
Il n'y a qu'un problème philosophique vraiment sérieux: c'est le suicide.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La lutte elle-même vers les sommets suffit à remplir un cœur d'homme; il faut imaginer Sisyphe heureux.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
원본 출처- 나무위키 https://namu.wiki/
오늘은 카뮈의 부조리 철학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카뮈의 부조리 철학을 알게 되면서 불교의 공 사상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은 공허한 듯 보이고 의미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허무주의에 빠져 살지 말고,
카뮈의 말처럼 부조리에도 굴복하지 말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 시간이 되었으면 해서,
이야기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다음에 더 유익한 철학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2023.05.22 - [마음 치유, 위로의 말] - 불교의 공 사상은 무엇일까요? -공 사상의 뜻과 의미 간략히 정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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